[리뷰] 세인츠 로우 2, 소년의 꿈 (다시 씀)


<세인츠 로우 2>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성성을 교육하는 환경에서 자라온 성인 남성이라면 어린 시절의 감수성이 생각날 듯 한 게임입니다. 말하자면 폭력성의 분출입니다. 소년 시절에 꿈꾸었던 나쁜 아이에 대한 로망을 아주 잘 표현한 게임입니다. 이에 비해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는 오히려 더 성숙한 남성을 위한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상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릅니다. 주요 임무를 따라가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든 보조임무를 수행하든,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할 수 있는 행위의 대부분은 범죄와 직결됩니다. 옷도 입고 집도 사고 꾸밀 수 있지만, 뭐, 그런 건 이 게임의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게임의 핵심인 폭력을 더 맛깔나게 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종부터 체형과 얼굴형까지 세부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을 사입는 것이든,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저지르는 행위를 좀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아이덴티티가 (느슨하게라도) 정해진 GTA와는 다르게 자신이(혹은 자신이 정성을 쏟은 캐릭터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좋은 옷을 사입거나 집을 꾸미면 스타일 점수가 올라가는데 이것은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올라가는 명성 점수에 보너스가 됩니다. 스타일이 폭력을 위해 존재한다는 관계를 경험적인 층에서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죠.

소년들의 꿈에는 항상 적대자가 있습니다. <세인츠 로우 2> 역시 플레이어의 악행을 저지하려는 적대자를 두고 있습니다. 네, 경찰입니다. 언젠가 GTA의 경찰은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폭력에 대한 책임감이 이렇게 표현되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이제, <세인츠 로우 2>에 비하면 성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도덕이나 법치적인 면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세인츠 로우 2>역시 GTA와 비슷하게 갱 그룹 간의 세력다툼이 이루어집니다. 플레이어가 어느 세력에 적대적인 행위를 하면 적대적 수치가 늘어나죠. 이런 시스템은 도덕률이나 법률과 상관없이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나타낸 겁니다. 즉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뒤따르게 된다는 겁니다. 나쁜 짓을 해서 벌을 받는 것이든, 친구에게 욕을 해서 친구와 멀어지는 것이든, 발을 내딛었기에 걸어가는 것이든,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뒤따릅니다. 하지만 <세인츠 로우 2>의 것은, 꿈을 위해 그 시스템이 가진 의미, '행위와 결과'를 희석해버렸습니다.

경찰이든 다른 세력의 갱이든 뭐든, 모두 플레이어의 폭력행위에 대해 무방비합니다. 많은 적대자들이 플레이어의 막강한 체력이나 화력에 제대로 대응도 못 해보고 픽픽 쓰러집니다. 그 적대자들이 진정한 적대자가 되기 위해선 수십, 어쩌면 수백이 동시에 달려들어야 할 겁니다. 아, 일당백! 그 얼마나 소년의 로망입니까. 그 로망을 위해 모든 적대자들은 적절한 선에서 저항하다가, 그 로망을 위해 죽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을 위해 다양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야기구조에서 갈등이 심화되다가 갑자기 절대적인 존재가 등장하여 모든 갈등을 해결해버리는 수법)들까지 동원합니다. 그 예의 하나로 '용서와 망각'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플레이어 자신이 벌려놓은 (피와 폭력의) 난장판이 수습되지 않을 때, 용서와 망각이라는 장소에 들어가면 모든 갱 세력의 적대감과 경찰의 수배령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갈등이 해결(?)됩니다. 책임은 저 멀리 사라집니다. 말 그대로 사라집니다. 어떤 개연성도 없이! 갑작스럽게! 치트키 쓰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게다가 이 용서와 망각은 스토리 속에서도 언급됩니다.

용서나 망각만 바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보통 아무 임무도 맡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즉, 무차별 살인)를 저지르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무기도 모자라서 내키는대로 마음껏 쏘고 부수고 폭파시킬 수도 없죠. 하지만 보조임무를 맡으면 어떨까요? 그 중에서도 '대난동'이라는 보조임무는 이 게임의 존재의의를 함축해주는 상징적인 임무입니다.

임무내용은 이렇습니다. "잭 존슨이라는 작자(잭 톰슨-비디오게임의 유해성을 주장하며 관련 소송을 다수 맡은 미국의 변호사- 패러디?)가 언론의 관심을 끄는 걸 막기 위해 도심에서 '대난동'을 부려야 한다." 그러려면 제한된 시간 내에 도시의 시설물들을 최대한 많이 부수어 일정 목표의 피해액을 달성해야 합니다. 이 임무에서 총과 탄약은 무제한으로 지급됩니다. 자동소총이든 로켓런쳐든 가방폭탄이든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죠. 시설물을 부술 때마다 돈의 액수가 올라가는 소리는 경쾌하다 못 해 쾌락적입니다. 임무에 성공하면 수배령이든 갱 세력의 적대감이든 모두 말끔하게 사라집니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합니다. 아, 기계로 만든 신이시여...

'폭력적인 게이밍'을 통해 '폭력적인 게이밍에 대한 비판'에 대한 관심을 돌린다는 건 분명 멋진 비유지만...유치합니다. 소년스러운 감성이죠. 이 게임은 소년이 바라는 폭력적인 로망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수십발의 총알에 맞고 수번을 차에 치여도 죽지 않는 체력, 정말 능수능란한 무기의 사용, 일당백, 파괴와 난동과 학살, 책임의 회피...

이 게임은 이러한 로망이 얼마나 게임계를 지배하고 있는가, 샌드박스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이런 것 밖에 다루지 못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세인츠 로우 2> 하나만 보자면 '성숙한 어른이 어렸을 적의 로망을 실현시키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게임'이라고 좋은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게임이 폭력과 무책임으로 가득한 게임계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19세 이하의 감성을 가진 19세 이상의 게임을 생산하는...

p.s.
....이 게임의 스토리? 글 속에서 용서와 망각이라는 장치의 스토리 개입을 언급했던 것처럼, 개연성 같은 건 소년의 로망에 바쳐버린 스토리입니다. 감옥에서 탈출했는데 죄수복을 입고 시내를 돌아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은 내러티브가 어디 있을까요.

by 퍼플렉싱 | 2008/11/12 22:57 | 게임을 하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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