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어>의 레벨 디자이너는 컴퓨터다

한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
절차적 생성(procedural generation)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다른 분야에서도 사용되는 말이지만 게임 분야에서는 게임 내의 콘텐츠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거창한 듯 싶지만 그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콘솔게임에 익숙한 분이라면 '이상한 던전' 프랜차이즈의 자동으로 생성되는 던전을, PC게임에 익숙한 분이라면 <디아블로>를 비롯한 로그라이크류 게임의 자동생성던전을 생각해볼 수 있지요. 단순히 텍스쳐만 자동으로 생성되는 게임도 있고, NPC나 적 캐릭터의 외형, 그리고 게임이 벌어지는 세계의 지형까지 랜덤하게 생성되는 게임(<드워프 포트리스>, <저스트 커즈>)이 있습니다.

게임 컨텐츠의 대부분이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예도 오래 전부터 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 <엘리트>(1984년)는 우주와 행성의 위치, 그 이름, 정치, 미션, 설명까지 게임의 거의 모든 컨텐츠가 무작위로 생성된다고 합니다. 최근 나온 게임으로는 월 라이트가 디자인한 <스포어>가 거의 모든 콘텐츠를 절차적 생성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포어>가 제공하는 콘텐츠에는 무엇 하나 '미리 디자인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엘리트>

 
96kb짜리 FPS로 유명했던 <.크리거>(.kkrieger)도 이 절차적 콘텐츠 생성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제작자가 말하길 통상적인 방법으로 개발했다면 그 용량이 200~300MB에 달했을 거라고 합니다.

<.크리거>는 절차적 생성 방식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 텍스쳐들은 퍼픽셀 기반이 아니라 생성 히스토리를 통해 저장되었기에, 히스토리 데이터(모든 해상도에서 텍스쳐당 300바이트 이하)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생성기 코드는 실행가능한 형태로 컴파일되어서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졌다.
  • 메쉬는 기본적인 상자나 원통 같은 기본 입체에서 생성되어 원하는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이 두가지 생성 과정은 게임의 엄청난 로딩 시간을 설명해준다. 게임플레이의 모든 자산은 로딩 때마다 다시 만들어진다. 게임의 음악은 V2라 불리는 다기능 신디사이저로 만들어졌다. V2는 실시간으로 음악을 제작했다.

 

- http://en.wikipedia.org/wiki/.kkrieger

 

<.크리거>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앤드류 둘이란 사람은 이것을 '레벨 디자이너의 죽음'으로 표현했습니다. 레벨 디자인이란 인위적인 창조의 과정인데 반해, 절차적 생성은 오히려 컴퓨터 예술에 가깝습니다. 컴퓨터 예술이란 '사람이 컴퓨터를 이용해 창조하는 예술'이 아니라 '컴퓨터가 지적 주체가 되어 창조하는 예술'을 말합니다. <스포어>는 전체적인 흐름(세포-생물-부족-문명-우주)은 인간(월 라이트 外)이 정했지만, 그 세부사항, 그러니까 인간이 레벨 디자인을 통해서 제공했던 세부적인 경험은 컴퓨터가 만들어 제공하지요. 컴퓨터가 레벨 디자이너의 역할을 대신 하는 셈입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시리즈는 절차적 생성 기술의 반대가 되는 인간적인 창조의 예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GTA 시리즈의 그 광범위한 도시 디자인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치고 있습니다. 건물 하나하나, 텍스쳐 하나하나, 그 내부까지 말이죠. 이런 작업은 (실력있는 아티스트들을 많이 고용한다면) 보다 쉽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개발팀이, 개발사가 그 엄청난 작업을 해낼 수는 없을 겁니다. 게다가 <스포어> 같은 경험은 전통적인 레벨 디자인을 통해서는 나올 수가 없으리라 봅니다.

 

<그랜드 테프트 오토 IV>

일일히 사람의 손을 거쳐 디자인된 것은 컴퓨터로 생성되는 것보다 더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기 쉽다.

 

크리스 크로포드는 <크리스 크포포드가 게임 디자인에 대하여><Chris Crawford on Game Design, 2003)라는 책에서 '데이터 중심의 디자인'과 '처리 중심의 디자인'이란 말을 썼습니다. '처리 중심'이란 절차적 생성과 유사한 개념이라 볼 수 있는데, 그는 이것이 '데이터 중심'(더 많은 그림, 더 많은 3D 모델을 집어넣기)보다 실현하기가 어렵고 그 결과에 쉽게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컴퓨터다운 것이며 게임 디자인의 가장 유용한 이론적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드워프 포트리스>

절차적 생성의 단점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놓을만한 처리과정을 설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소규모 개발사의 절약을 위한 시도든, <스포어> 같은 독특한 경험의 창조를 위한 것이든, 절차적 생성 기술은 게임계의 화두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컴퓨터 주체라는 점이 혐오감이 드나요? 아니면 흥미가 생기나요?

 

 

읽어볼만한 것들

by 퍼플렉싱 | 2008/09/15 19:23 | 게임을 하다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perplexing.egloos.com/tb/202473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JOSH at 2008/09/15 23:12
> 게임 컨텐츠의 대부분이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예도 오래 전부터 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 <엘리트>(1984년)는 우주와 행성의 위치, 그 이름, 정치, 미션, 설명까지 게임의 거의 모든 컨텐츠가 무작위로 생성된다고 합니다.

네...
그래서 엘리트 세이브 날려먹고 새로 시작했을 때 주위 지도가 달라지는걸 알고 좌절 했었습니다...
그땐 게임을 갓 접하던 때라 잘 몰랐었는데 정말 세심한 설계였죠.
Commented by 퍼플렉싱 at 2008/09/19 23:52
그것이 JOSH님의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었군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